최근까지도 전세사기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애초에 과거부터 있던 문제임에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었다. 전세제도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정말 특이한 갈라파고스의 전형적인 제도이다. 다만 부정적으로만 보기에는 사회초년생들 혹은 돈을 모아야하는 이들에게는 꽤나 괜찮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전세제도는 태생부터 문제점들을 너무나 많이 안고 있었다. 잘만 이용하면 좋은 제도고, 다른 나라에서도 탐낼 수도 있는 제도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문제들을 사기치는 쪽이 아니라 사기 당하는 쪽이 문제라는 식으로 수십년간 방치해왔다.
전세 제도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는 다른 곳을 찾아봐도 좋고, 아마 향후에 몇몇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다만 오늘은 최근 ‘세 모녀 전세사기’ 징역 뉴스와 함께 대학가 전세사기에 대한 뉴스들까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얼마 전 잘못했으면 내 가족 중 하나가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어 기록해놓으려고 한다.
■ 전세집 계약 좀 도와줘!
대략 4~5개월 전 동생이 신혼집을 구하려 한다고 연락이 왔다. 매매가 아닌 전세라고는 해도 몇 억이 오고 가는 일이니 혼자서는 아무래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부동산 금융 쪽에서 일을 했던 내가 본인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알겠지란 생각으로 같이 다녀달라는 이야기였다. 작년부터 전세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나 역시 그 불안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공인중개사들이 얼마나 실.무.적.으로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으로 집을 구해보는 초보자들을 어떻게 해먹는지를 너무나 많이 봐왔으니말이다.
■ 일단 계약하시죠?라는 공인중개사.
동생이 집을 먼저 보고 괜찮거나 마음에 들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아무래도 일을 해야하고, 집이야 살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야하니 말이다. 여튼 연락받고 일주일 뒤 마음에 드는 집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얼마나 마음에드는지 누가봐도 바로 계약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중개사분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요새 불안한 부분들이 많아서 특약을 몇 개 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라고 말이다. 중개사는 어떤 특약인지도 묻지 않고 “다 넣어줄테니 그냥 계약하러 가시죠.”라고 넉살 좋은 표정을 짓으며 대답했다.
나는 안전장치로 집주인이 사기를 칠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특약들을 정리해서 동생에게 주었고, 동생은 중개사에게 전달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중개사는 “싫다.”이러면 집주인이 싫어한다 등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특약이든 다 넣어준다던 사람이 바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내가 요구한 특약들은 수백 건의 계약이 오고갈 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다. 그리고 집주인이 사기를 치지 않으면 양쪽 모두에게 어떠한 피해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중개사는 극구 거절했고, 그런 특약 없어도 문제 없으니 일단 가계약금을 넣으란 식으로 동생을 독촉했다.
■ 이 물건은 포기하렴. 아무래도 전세 사기꾼 같다.
정말 웃긴 일이다. 나는 동생에게 그곳은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으니 동생에게 포기하라고 이야기했다.
애초에 내가 요구했던 계약서 외에 동생에게 전달했던 계약서를 보니 기가 차는 조항들도 있었는데 그것들의 수정을 요구했더니 그것도 싫다고 했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조항들을 몇 가지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 계약 만료 후 퇴거시까지 난방, 상하수도, 전기시설 등의 주요 설비에 대한 부분들 모두 임차인이 수리한다. 고의과실과 상관없이 무조건 임차인이 비용을 부담하라고 한다. 애초에 민법 제 623조는 관심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 뿐이랴. 임대차보호법도 알빠냐는 식이다.
- 물건에 문제가 있어 대출실행이 되지 않아도, 임차인이 계약금을 임대인에게 넘긴다. 웃긴다. 이 부분 특약으로 요청을 해도 집주인이 싫어한다고 해줄 수 없다고 한다. 당연히 싫어하겠지. 애초에 물건과 물권도 구분 못하는 중개사였다. 처음에 대화하다 중개보조인이나 사무보조원인줄 알았다.
■ 결국 경매로 넘어간 그 집.
이 외에도 정말 말도 안되는 조항들은 가득하고,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약은 전부 거절했다. 동생도 계약서에 내용들이 이상해서 포기했지만 집 자체로는 꽤나 괜찮았기에 아쉬움이 좀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몇 달 뒤 경매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낯익은 집이 보였다. 바로 그 중개사가 중개하던 집이었다. 그 난리를 치더니 경매 물건으로 넘어와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누군가 계약을 해서 들어가 있었다. 아마 그 집에 들어간 사람은 계약서를 보지 못하고 중개사의 문제없다는 말만 듣고 들어갔으리라 생각된다. 어쩌면 동생도 내가 아니었으면 그 집에 들어갔다가 전세사기로 골머리를 앓았을 거다.
■ 한 놈만 걸리라는 역겨움.
내가 원했던 특약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 좋은 중개사 분을 만나 모두 계약서에 넣고 동생 역시 전세집을 잘 얻어서 살고 있다. 애초에 수백건의 계약서에서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에게 문제가 없었던 항목들인데 사기를 치려고 하니 넣어주기 싫었겠지. 모든 공인중개사들이 사기꾼은 아니다. 좋은 중개사분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정말 계약서를 처음 잡아보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사기쳐먹으려고 하는 중개사들이 있어서 문제다. 중개사도 절대 쉽게 딸 자격증은 아니다. 그러면 좀 더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다. 매번 실무에서는 안그래요라는 식으로 모르는 사람들 속여 먹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런 중개사들 때문에 정말 힘들게 일하는 좋은 중개사분들까지 욕먹이지 말고 말이다.